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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청교도

전성태 2018. 2. 5. 15:20

<영국의 청교도>


1534년 헨리8세 왕비를 바꾸기 위해 교회를 바꾸기로 결심,
그리하여 영국이 개신교 국가가 됨
1553-1558년  메리여왕은 아버지의 개종노력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도로 남은 딸
1558-1603년 다른 딸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 절충인 영국국교회를 만듦
(신학은 개신교를 따르지만 형식은 구교를 닮은 종교가 생겨난 것)

이러할 때 청교도(Puritanism) - 영국 국교회를 '정화함으로써purifying' 심화된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좀 더 급진적인 무리들, 즉 칼뱅주의 개신교도들에게 해당되는 이름 - 가 생겨남.
-그들은 가톨릭과 유사한 형식이나 형상이나 관습을 전부 제거하고,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삶과 예배의 지침으로 삼는 '순결한'교회를 세우고 싶어 했다.

엘리자베스 1세( 이 '처녀 여왕'에게서 '버지니아'라는 식민주의 이름이 나왔다.)에게 아이가 없었던 탓에, 1603년 영국의 주권은 스튜어트 왕조로 넘어가 버렸다. 스튜어트 왕조는 국교회 내의 청교도파에 공감하는 바가 거의 없었다. 1630년이 되도록 의회안에서 일부 지원을 확보한 것 외에는 영국에서의 미래가 너무 암울했기 때문에, 수만 명의 청교도들이 길고 위험한 여행의 위험을 감수하고 아메리카에 정착했다.
1640년 내전이 발발 영국의 상황은 극적인 변화, 결국 청교도파와 의회가 승리함.
1649년 찰스1세의 처형.
왕이 사라지면서 청교도 군대 지휘관이었던 올리버크롬웰이 공화국 영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1658년 크롬웰이 죽고 1660년 청교도에 반대하는 스튜어트왕조가 복귀.
이후 10년간 영국의 청교도들은 박해와 억압의 세월을 보냄.
1685년 로마카톨릭교도였던 제임스2세가 왕위를 오름.
1688년 영국 국교회의 개신교도들이 이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우위를 다시금 주장하면서 제임스를 국외로 쫓아내고 왕위는 항상 신교도가 계승해야 한다는 법률을 선포(지금도 이것은 법률도 정해져 있음)
이른바 '명예혁명'이다.
영국국교회는 여전히 국교로 남게 되었지만 청교도 계승자들(회중교회 교인, 장로교인, 침례교인) 또한 '비국교도'로서 공식적인 용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비국교도들은 국교도(또는 성공회)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정치 요직에서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같은 주요 대학에도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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