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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온유함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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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온유함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전성태 2019. 4. 25. 07:54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민14:1-5)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민16:4)

 

모세는 백성의 원망과 불손종을 앞에 두고 그들을 권위로 책망하거나 노하지 않습니다. 단지 회중 앞에 엎드립니다. 분명히 모세는 자기가 인도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원망과 반역을 보고서도 절대 심판의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들 회중앞에 엎드렸을 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비해 옳은 위치에 있다고 확신할 때, 말과 행동을 잘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자세이기도합니다. 상대방보다 자기 생각이 분명 옳을 때, 남의 실수가 명확하고 정죄하기 마땅할 때, 그 때 그 사람의 반응이 어떠하냐에 따라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확실한 옳음의 위치에서 회중 앞에 ,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결코 그들을 판단하며 매몰차게 호통을 치지 않습니다. 잠잠히 그들을 바라보고 엎드렸던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이러한 모세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언제나 가능할까 생각하니 까마득하다는 느낌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성을 볼 때마다 여전히 절망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였으니 너희도 거룩하라' 주님이 우리에게 거룩을 명하시니, 분명히 거룩의 능력을 주셨다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구해야 합니다.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옳음을 쥐고 있는 리더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성급한 분노를 거쳐야 합니다. 모세의 온유함을 오늘도 내 삶 속에 녹여내는, 거룩의 몸부림과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는 평을 받았던 것입니다.

'참/용/기' 를 배웠습니다. 학교 연수시간에 어느 EQ전문 교수님이 칠판에 쓰신 내용입니다. 참아주고, 용서하며, 기다려주기. 이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부모 또한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지녀야 할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아직 철이 없고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가르치는 옳음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 옳음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다그치고 노하고 꾸중하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을 배워 그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5권의 페이지를 넘길 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내렸습니다. 그 장발장의 모습이 온유한 모세의 모습, 아니 거룩한 예수의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딸에 대한 집착과 애증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축복하며 그들의 곁을 떠날 때,  그 모습은 아름다움, 숭고함, 거룩함이었습니다. 저는 장발장을 읽으면서도 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모멘텀은 정죄와 판단이 아닌, 용서와 사랑임을 확신했습니다. 물건을 몰래 훔쳐 나갔던 장발장이 경찰의 손에 붙잡혀 신부 앞에 섰을 때, 그 신부의 반응은 익히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참아주고, 용서하고, 기다려주는 그 사랑이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교육자로서의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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